작년 여름, IR 피치덱의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자마자 제가 시작한 것은 공동창업자 구하기였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개발을 책임져 줄 공동창업자였죠.
엄밀히 말하면 저는 코드를 한 줄도 짤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걸 입밖에 낼 만큼 깜냥이 되는 사람도 아니지요. 회사에서 만났던 개발자 몇 명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피치덱을 보내주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죠. 하지만 결국 한 명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피치덱은 증명한 것도 없고, 증명해 나갈 최소한의 실행력을 가진 팀도 없는 예쁜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돌이 창업자가 IT 스타트업 창업해먹기 쉽지 않다... 는 이야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치덱에 적힌 내용뿐 아니라 저 자신도 함량미달임을 알고 있었거든요. 공동창업자를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 사업의 전망과 매력도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그것을 설명하는 최규형이라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둘 다이기 때문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홀로 수라장을 겪고 있는 동안엔 그것을 알지 못했죠.
"비개발자가 창업하기 진짜 힘드네", "내가 알고 있는 개발자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데이터 사이언스고 나발이고 앱개발을 배울 걸 그랬어." 실제로 저는 어떻게든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을 찾아내 탓하기 바빴습니다. 마치 축구선수가 왜 손을 못 쓰느냐고 불평하는 꼴이죠. 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왜 개발자 공동창업자를 구하지 못했던 걸까요?
사업을 해보자고 설득하는 저 자신조차 사업을 위해 땀을 흘리지 않았고,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개발자 공동창업자가 아니라, 그냥 개발을 맡아서 해 줄 사람을 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지나친 말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예의가 없었고,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창업에 함께 하자고 말하기 전에, 땀을 충분히 흘렸어야 했습니다. 개발을 할 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사업적 가설을 어떤 형태로든 검증하고자 발로 뛰었어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뛰고 땀을 흘리는 것은 창업을 목표로 하는 나 자신과 사업에 대한 싸가지이자, 내가 뛰어들려는 수라장에 끌어들이려 하는 사람에 대한 싸가지입니다.
저는 도심 주변부의 허름한 힙플레이스를 순방하며 장밋빛 미래를 구상하고, 있지도 않은 제품을 들고서 귀중한 자영업자들에게 영업을 해보려는, 소위 창업가 놀이를 했습니다. 그 뻘짓 대신, 그 제품을 사용해줄 고객을 찾아 페이스북 페이지든 카톡 오픈방이든 어떤 형태로든 서비스를 시작해 보아야 했습니다. 플랫폼 서비스인데 아무 컨텐츠가 없다면 내가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머리론 알면서도 끝까지 하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안 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치밉니다.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흘릴 수 있는 모든 땀을 흘려서 만든 작은 결과를 만든다. 물론 이걸 한다고 무조건 개발자 공동창업자가 절로 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작정 창업을 해 보려는 비개발자 창업자가 저지르는 오류와 무례를 고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현실의 잠재고객들과 대화하면서 제품은 현실에 맞게 진화해 나갈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해냈다면, 작은 성과는 따라올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창업가의 땀을 흘림으로써 문돌이 예비창업자는 점점 더 창업가에 가까워지게 될 겁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그 사업은 비로소 자신의 '무언가'가 됩니다. 땀을 흘려서 작은 결과를 만들어낸 창업자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이 세상의 작은 진실을 하나 발견해 낸 겁니다. 남들이 보기엔 10원짜리 동전을 줍고 세상 행복을 다 얻은 팔푼이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죠.
이것만이 제가 생각하는, 개발자 공동창업자를 구하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창업자가 개같이 구르고 땀을 흘린 끝에 작은 결과를 손에 쥐었다면, 스스로 확신에 가득 차 있을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없는 길도 만들어서 개발자 공동창업자를 기어코 구하고 말 것이라 생각합니다. 뒷조사를 해서 그 사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든, 여자친구를 구해 주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죠.
이것은 제가 실패에서 학습한 가설이며, 다음에 창업을 준비하게 된다면 실천할 가설입니다.
에어비앤비 창업팀 3인 중 개발을 담당했던 블레차르지크는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참여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구 MVP의 코드량을 게비아가 반으로 줄여버리면서 발 하나를 가까스로 걸치게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시행착오와 실패가 계속되면서 블레차르지크는 팀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 때 나머지 2명, 체스키와 게비아는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은 에어비앤비의 핵심 비전을 수립하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블레차르지크는 확신을 얻어 팀에 남았고, 오늘의 에어비앤비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개발자 공동창업자에 대한 예의이며, 그것을 위한 창업가의 땀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개발자 공동창업자 구하기는 본질적으로 설득의 문제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고자 한다면 pay it forward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비개발자이면서 창업을 하고 싶어한다면, 설득해야 할 첫번째 고객은 옆집 철수가 아니라 바로 개발자 공동창업자가 될 겁니다. 개발자 공동창업자를 못 구하면 고객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제품이 없을 테니까요.
구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와는 정말 정말 상관없이, 당신과 당신의 제품은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시작부터 땀을 함께 흘려줄 누군가가 있거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면 축하드립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로... 부러워서 그렇습니다. 껄껄. 하지만 전 이 세상에 모든 잡다한 것들을 무시하고 보편적으로 세상을 관통하는 규칙이 있다고 믿으며, 그 중 하나는 바로 정직과 예의라고 믿습니다. 창업자로서 자기 자신, 제품, 사업과 그 수라장에 끌어들이려 하는 누군가에 대한 싸가지 말이죠.
제목에 낚였다 싶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원래는 개발자 공동창업자 구하기에 관한 영상 하나와 블로그 글 2개를 소개하면서 얘기를 좀 풀어보려 했었어요. 각자의 상황에 맞는 각자의 논리가 있고, 그것에 적합한 방법론들이 있습니다. 보면 재밌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두세번씩 보고 읽다 보니, 결국은 창업자로서의 싸가지를 다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무슨 수를 쓰든 구할 수 있지 않겠냐라는 최규형식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포스팅의 실익과 가치를 떠나서 그냥 더 읽기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올리고, 제가 본 자료는 부록으로 첨부합니다.
재미가 없었다면 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언젠간 도움이 될 날이 오기를! 그럼 20000!
어쩌면,,, 본문보다 더 유익할 부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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