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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START UP?/CASE STUDY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미국을 점령한 정리 덕후 성공기



넷플릭스를 최근 들어서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SUIT라는 미드의 모든 시즌을 다 봐 버렸더군요.

다음은 뭘 볼까, 넷플릭스를 쏘다니다 보니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추천 목록에 떴습니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쇼핑 관련된 프로그램이겠거니 관심도 없다가, 우연히 그녀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느낀 바가 있어, 이 공간에도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청소 외길을 우직하게 걸어간 곤도 마리에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데 강박증을 가진 소녀는 19세 때부터 친구들의 물건을 정리해 용돈을 벌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인력회사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부업으로 계속했습니다. 


초기엔 5시간 정리해서 10만원 정도를 벌었고, 나중엔 퇴사해서 정리를 전업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그녀는 2011년 일본에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을 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한국에도 번역되더니 2014년에는 영문 번역되어 미국 땅을 밟았죠.


하지만 그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홍보가 쉽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NYT 기자가 책

내용을 토대로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직접 실천한 기사를 낸 뒤, 곤도 마리에의 책은 80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그야말로 대박을 칩니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미국에도 당연히 물건을 정리해주는 서비스는 있었습니다. 아예 주택을 통째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도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곤도 마리에의 정리는 단순 정리를 넘어 자기계발과 자아성찰을 통한 "빛나는 인생"을 약속합니다.


> 곤도 마리에는 고객 집을 처음 방문하면 거실 한가운데 앉아 바닥을 쓰다듬으며 집과 인사를 나눈다.

> 물건을 하나씩 꼭 안아보고 만져봤을 때 설렘을 주지 않는다면, 진심 어린 감사 표시와 함께 작별을 고한다.

> 물건에도 생명이 있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킹 가운데를 꽉 묶으면 스타킹이 숨을 못 쉰다고 믿는다.


동양 특유의 주술적 느낌을 담은 것이 특이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이렇게 정성들여 의식 치르듯 정리한 결과가

실제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그녀의 프로그램의 에피소드에서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 육아로 다툼이 잦아진 부부가 집을 싹 정리하고 화해하는 부부

>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짐을 정리하는 아내

> 무질서한 집을 정리하며 삶을 반성하고 새 계획을 세우는 게이/레즈비언 커플




그녀의 정리가 정말로 인생을 바꿔 주지는 않을 겁니다.

곤도 마리에의 케이스는 한때 유행한 "불우한 가정의 집 리모델링 해주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집이라는 물리적인 환경을 바꿔 줌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란 스토리를 파는 것이지만...

뭐 실제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지는 결국 본인들의 손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업가의 입장에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고, 

지갑을 연 것에 상응하는 만족을 제공한 것이죠. 


곤도 마리에는 사람들이 따분한 의무로만 여겨왔던 생활의 일부에 특별한 옷을 입히고 포장하여 제시했습니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이미지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청소 외길을 걸어 온 젊고 귀여운 여성, 

미국이라는 나라엔 여전히 신기한 동양 주술적 색채를 덧입힌 물건 정리법.


이미 성공한 사례에 대해서는 뭐든지 이유로 갖다댈 수 있긴 합니다만,

전 아래 도식이 국가와 나이를 뛰어넘어 "make sense" 한 것이 가장 강력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쌓이고 묵힌 옛날 물건을 소중히 껴안고 떠나보내준다 

=

쌓이고 묵힌 과거를 소중히 껴안고 떠나보내준다

=

훌훌 털어버린 당신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한다



스타트업의 예시로서는 사실 부적절합니다.

곤도 마리에는 성공한 덕후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수가 된 팬 같은 성공한 덕후 말고ㅋㅋ)

누구나가 꿈꾸지만 누구나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자신의 강박증에서 시작해,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끝에 이 세상에 워킹하는 비즈니스 로직 (물건을 버린다 = 과거를 극복한다 = 인생이 빛난다)을

결과로 증명해 냈다는 점은 스타트업이고 자시고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크죠.


IT 스타트업의 아이템은 해결하는 목적의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1.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시키는 페인킬러, 실용의 영역

2. 고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비타민, 엔터테인먼트의 영역


2번의 대표적인 예로는 게임이 있습니다만 게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VC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타트업의 세계에서는 게임은 죽고, 1번의 아이템에 녹아든 게이미피케이션이 살아남았죠. 곤도 마리에의

경우에는 1번과 2번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넘치는 물건 속에서 고통받는 이에게 정리의 비법을 알려주니

실용적이죠. 하지만 그 실용의 영역에서 전에 없던 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니 비타민이 됩니다.



일상의 영역에서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꿔내는 아이템

즐길 것은 넘치는데 먹고 살기도 참 바쁜 시대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좋아해 주지 않나 해요. 힘들어 죽겠는데 별도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보단, 매일매일 자신이 의무처럼 하는 것들ㅡ


> 밥 먹기

> 도심 이동하기

> 청소하기


같은 일들을 엔터테인먼트, 자기PR,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승화시켜주는 것에 열광합니다.


> 밥 먹기 --- 맛집 탐방 + 인스타

> 도심 이동하기 --- 공유 전동 킥보드로 재밌고 빠르게

> 청소하기, 집정리 --- 곤도 마리에식 정리정돈+물건 버리기


뭐 이런 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간헐적 다이어트, 성장하는 수면 시장도 비슷하고요.

오로지 주말만 우리의 인생이 아니고, 매 순간순간이 다 우리 인생이잖아요. 일상성, 체험성, 지속성.

요즘 세상의 실용이란 일상 속에서 감정을 건드려 주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요.


여기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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