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화폐란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가치 교환 시스템입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그리고 오로지 국가만이 발행 가능하다는 것에서부터 매우 다양한 세부 규칙들로 구성된 시스템이죠. 화폐라는 것이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화폐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게 판단되는 "가치"를 표현, 저장, 교환하는 방법 중 오늘날까지 자리잡은 best practice인 것이죠.
경제, 금융, 화폐라는 단어는 참 어렵게만 들리지만 "가치에 대한 규칙의 총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가치라는 영역을 표현하고 거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이후부터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기까지 경제에 대해 막연한 인상만 갖고 있던 저로선 꽤나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우리가 공기처럼 받아들이는 화폐라는 시스템은 그것이 진리여서 누구나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기처럼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누구나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의 기저에는 "신뢰"가 있습니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올까요? 내 지갑 속에 든 만원짜리 지폐는 일만이라는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일만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무엇과도 교환 가능하다는 것을 누가 증명하고 있을까요. 증명 주체는 일반적으로 "공신력"을 지니는 국가기관이 됩니다. 국가가 먼저 신뢰를 보장하고, 그 다음에 금융기관과 여러 사기업이 그 화폐를 "게임의 규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돌립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개개인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맥락에서 블록체인이 등장하고, 암호화폐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가치를 표현, 저장, 거래가능하게 하는 대안적 시스템이죠. 암호화폐는 수많은 측면에서 비판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중에서 커다란 비판점은 역시 "어떻게 가치를 보장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공신력이 없다, 가치를 보증하는 믿을 만한 기관이 없다, 실물도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데이터를 "돈"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등등이죠.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돈"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지금의 종이화폐란 실물가치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금융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속한 디지털 포메이션으로 돈이란 더더욱 실물에서 멀어지고 있죠. 본질은 사람들의 동의와 신뢰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보증하든 보증하지 않든,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돈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암호화폐가 가치를 갖지 않는다면 곤란해지는 이해관계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이들의 규모는 곧 암호화폐의 가치를 지탱하고 보장하는 일종의 인프라가 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인프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봅니다.
Millions spent on mining infrastructure
블록체인을 비롯한 여러 암호화폐는 채굴(mining)이라는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채굴은 복잡한 연산 작업을 컴퓨터로 푸는 작업이며, 그래픽카드를 비롯한 하드웨어를 가지고 컴퓨팅 파워를 투입하게 됩니다. 채굴은 생산자 입장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고자 하는 경제활동이 되며, 블록체인 입장에서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리소스(컴퓨팅 파워)를 제공받는 대신 인센티브를 지불하는 경제활동이 됩니다.
- 채굴에 필요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구축 및 구매에 대한 경제적 유인
- 채굴에 특화된 하드웨어 생산에 대한 경제적 유인
- 채굴자(miner) 네트워크로부터 새로운 혁신에 대한 수요가 발생
Trustless Network Value
암호화폐는 분권화(decentralized)된 블록체인이란 장부를 바탕으로 하는 자산이며, 명칭과 같이 암호화 기술이 적용됩니다. 분권화라는 특성과 암호화라는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유력기관이 중간에서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아도 가치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에게 공개된 퍼블릭 주소, 나만 아는 프라이빗 주소 등을 통해서 신뢰보장의 문제와 신원확인의 문제를 해결하죠. 제3자의 보증이 필요 없다, 신뢰를 보장하는 중개인이 없어도 신뢰가 보장된다 하여 trustless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를 통해 암호화폐는 기존의 화페가 가지고 있던 단점을 극복하는 실용적인 기능성을 갖게 됩니다. 단순히 가치를 저장하고, 거래하는 것뿐 아니라 "실질적 기능성을 갖춘" 화폐죠. 기업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돈을 못 보내고, 해외에 보내려면 몇날 몇일이 걸린다거나 법적으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귀찮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물론 법적인 규제는 새롭게 생겨나겠지만, 적어도 중앙서버를 거쳐야만 하는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높은 수수료나 송금까지 걸리는 긴 시간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집니다.
- 고도의 암호화를 통해서 제3자 보증 없이도 신뢰가 보장되는 가치 교환이 가능
- 현재는 VISA와 같은 대기업이 중간에서 "유효하다"라고 인정해 줘야만 가치교환이 이루어짐
- 분권화된 시스템은 제3자 보증을 없앰으로써 기업 서비스 중단, 지리적 제한, 법적 제한에서 자유로워짐
Securing Cryptocurrency
돈이란 자본주의 세계의 꽃이며, 모든 것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시쳇말로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돈 없이 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돈은 가치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암호화폐 또한 기존의 법정화폐만큼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노력들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보안 하드웨어 개발 및 모바일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
- 많은 암호화폐는 법정화폐 교환(on/off ramps)을 보장함으로써 가능한 많은 안정성과 실용성을 담보하고자 함
- 이러한 암호-법정화폐 교환이 시장에 유동성을 계속 공급하고 있음
이 부분과 관련해서 암호화폐를 법정화폐와 연동시켜 버림으로써 안정성을 담보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있습니다.
Legislative Acceptance
그러나 암호화폐가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결국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기존 체제에 편입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있어도, 법 없이 존재할 수 있는 화폐란 없기 때문입니다. 화폐 가치를 보장하고, 나아가 관리하고 공급하는 주체로서의 기존 역할은 다소 내려놓겠지만, 그럼에도 일단 화폐인 이상 국가의 시스템에 편입되어야만 진정한 화폐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호화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아무리 회의적으로 보더라도, 이 액션은 암호화폐를 어떤 형태로든 국가 관리의 영역에 포함시켜 나가겠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국가가 암호화폐에 대해 동일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 보호대상 투자자의 투자행위에 암호화폐 투자가 포함되는 추세도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 암호화폐에 대해 세금을 거두는 정부들이 늘어나는 것은 암호화폐 네트워크를 법제화하겠다는 승인의 제스쳐
- 각 정부의 관점과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논의가 계속해서 진행 중
- 보호대상 투자자(non-sophisticated investor)에게 암호화폐 투자가 공인되는 추세
이 내용과 관련해서는 한국금융연구원 김자봉 선임연구원이 작년 작성한 아래 글을 참고.
<비트코인은 증권인가? - 증권에 대한 정의와 투자자보호>
Supply & Demand and Emotion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것은 사실 화폐라는 것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감정이죠. 감정이라기보다, 개인적으론 욕망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가 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그리고 가장 당연하게 충족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처럼 어느정도 객관적 근거나 실제 추세를 내세우며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이다"라는 측면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ICONLOOP 사업기획팀에서 잠시 인턴을 할 때에도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정부, 대기업, 기자들이 열심히 뛰어줘야 하겠지만은, 궁극적으론 수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용해야만 성립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이성의 영역만은 아니겠구나, 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인사이트 같은 게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만, 당연하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겠죠. 결국은 사람의 일입니다!
- 채굴보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
- 코인 보유자가 코인 월렛을 분실하는 등 코인을 잃어버림
-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은 계속 증가
- 공급이 감소함에 따라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승
+주관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화폐 영역에서 "감정"이란 시스템을 떠받치는 매우 강력한 요인 중 하나!
마치며
여기까지 '암호화폐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개론적인 내용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 새로이 개발되는 암호화폐의 개수만큼 다양한 판단 기준이 있을 겁니다. 암호화폐의 밸류란 어떻게 판단하는가, 스캠(scam) 코인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등 구체적 내용은 추후의 포스팅에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영상과 포스팅을 부록으로 첨부하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부록 1.
Youtube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5부작 링크
Youtube - KBS 경제다큐 <돈의 힘> 6부작 링크
부록 2.
*본 포스팅은 Blockgeeks의 온라인 코스 <Understanding Blockchain Economies>의 강의 일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