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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TART UP?/WEEKLY BOOK

인간 사고의 확장으로서의 머신러닝, <생각에 관한 생각>

왜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대학교 시절 "미디어와 예술"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툴이라는 관점에서 게임은 가장 동시대적인 이야기라는?


그런 소논문을 써 냈던 수업이었습니다. 아,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 "이야기의 미래: 가상계에서 부활하는 생존 시뮬레이터"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명확히 기억나는 게 하나 있어요.


소논문 중간평가에서 교수님께서 제게 던진 질문이었는데요.



"왜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한동안 저 말을 잊고 살다가, 파이썬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해 나가면서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기계라고 부르는 것은 물리적 실체와는 관계없이 알고리즘이라고 대략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알고리즘은 인간의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모방한 것이란 사실을요.



기계가 모방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은 분명히 기계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께는 새삼스럽고 당연한 이 말이 제게는 어떤 센세이션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네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두 개의 시스템


서론이 길었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심리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이 썼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는 두 개의 시스템에 대해 초반 상당부를 할애하면서 시작합니다.



시스템 1 = 프로타고니스트 (주인공)

- 무의식적으로(=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대부분의 정보는 시스템1 선에서 처리됩니다.

- 정신적인 노력이 거의 또는 아예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 정보를 추상적이며 복잡한 느낌이나 인상으로서 처리하고 명확하지 않습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피상적 사고, 본능, 충동, 직관이라 부르며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 주변이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느낄 때 두드러지고 크게 활성화됩니다.


"그건 순전히 시스템 1의 반응이었다. 위협을 인지하기도 전에 대처했으니."


"자네에게 지시하는 건 시스템 1이야. 속도를 늦추고 시스템 2에게 맡기라고."



시스템 2 = 사이드킥 (주인공 서포트)

- 기본적으로 게으르며 느리고 시스템1이 곤란해 할 때만 일을 시작합니다.

- 복잡한 계산 등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을 수행하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합니다.

- 시스템 1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돈하고 정리합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성,절제, 합리, 의심이라고도 부릅니다.

- 주변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두드러지고 크게 활성화됩니다.


"그는 마라톤 회의로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문제를 고심하지 않고 정해진 운영 절차대로만 처리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말해버린다. 시스템 2가 약한 사람이다."



대략 내용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두개의 시스템은 상호보완적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시스템 1에서 도맡아 처리하고,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일들은 시스템 2가 엉덩이 북북 긁으며 처리하는 식이죠.

책의 저자는 바로 이 두 개의 시스템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시스템 1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귀가 아주아주 얇습니다.

그때그때의 상황, 맥락, 감정에 휘둘리지만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죠.


시스템 1의 귀가 팔랑거릴 때 발생하는 흥미로운 효과들을 조금 언급해 보자면:


* 점화 효과

바로 직전에 노출된 정보나 이미지에 따라 그 다음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예시) 회색 노인 노화 등의 단어를 본 사람은 다음 실험장으로 이동할 때 나른하고 천천히 걸어감


* 기준점 효과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특정 수치를 기준으로 이상/이하 여부를 질문받으면 사람은 특정 수치 범위에서 추측한다

예시) 범죄자에 대해 3개월 이상 구형해야 할까요? / 9개월 이상 구형해야 할까요? 두 질문에 대해 추측 범위가 달라짐


"눈앞에 있는 별것 아닌 숫자가 내게 기준점 효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야 하고,

그에 따른 득실이 크다면 시스템 2를 움직여 효과에 맞서 싸워야 한다."



시스템1과 시스템2의 한계


시스템 1과 2는 마치 환상의 짝꿍처럼 보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것이 이론대로만 작동해 준다면 우리네 세계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재미있을 리 없었겠죠?


일단 두 개의 시스템을 운용하는 능력은 개인 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스템 1에 거의 완전히 의존하고, 어떤 사람은 시스템 2를 잘 활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문제는, 두 개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함정이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시스템 2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스템 1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인데요.

시스템 2는 그러나 정신력 자원이 고갈되면 작동을 멈추고 시스템 1에게 일을 몰아줍니다.

더 중요한 건, 시스템 1이 뭔가 잘못하고 있을 때 시스템 2가 그것을 용인해 버릴 수 있다는 거죠.


시스템 1이 경보 알람을 울리는 건 대개 두뇌에 축적된 정보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때인데요.

그러나 그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버릴 경우, 시스템 2가 열심히 일해도 항상 정답을 낼 수는 없습니다.

정답을 찾지 못하면 시스템 2는 처리해야 하는 정보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슬쩍 바꿔버리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통계학과 빅데이터


그래서 이 책은 중반부에 들어서며 시스템 1과 2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개선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서

수학, 통계, 그리고 데이터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이 심리학을 넘어 행동경제학으로 나아가는 지점이죠.


사전확률과 사후확률을 다루는 베이즈 정리부터 숫자를 다루는 다양한 방식을 시스템에 장착해야 한다는 것.

시스템 1의 직관을 더 날카롭고 정확한 것으로 다듬기 위해 기본적으로 우리에겐 숫자와 수학이 필요합니다.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건 정확히 data-driven을 이야기한다고 이해했습니다.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제시하는 방법들을 읽어나가면서, 매우 친숙한 개념이 계속 등장하더군요.

확률론, 베이즈 정리, 평균회귀, 베르누이 오류, 게임 이론. 이들은 머신러닝에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이라고 이해하는 학습하는 알고리즘 말이죠.


머신러닝은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이 접하는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로 자가학습하여 의사결정 로직을 스스로 개선해 나가는 기계의 작동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인간이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사고체계를 모방한 머신러닝 방법론을

인간의 사고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였습니다.

누적되는 정보와 경험을 확률론에 입각하여 분석하고 이를 시스템 1, 2가 활용하게 하라, 라는.


궁극적으로는 본 포스팅의 제목과 같이, 인간 사고체계를 외부의 데이터 기계로 확장시켜야 한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인데요?



미디어 : 인간 감각의 확장 = 데이터 : 인간 사고의 확장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의 미래: 가상계에서 부활하는 생존 시뮬레이터" 에서 다룬 이야기를 할까 해요.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듣게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마셜 맥루언이죠.

그는 미디어라는 외부 기계가 인간의 확장된 감각체계라는 주장을 매우 설득력있게 얘기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의 감각체계는 말 그대로 공간과 시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빛과 문자라는 가장 오래된 미디어부터 활자인쇄, 라디오, TV, 컴퓨터, 모바일...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감각기관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미디어를 통해서요.


미디어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 박정규역
출판 :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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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의 사고체계의 확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한 인간 또는 한 집단에서 확보할 수 있는 정보와 경험의 양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 세상이란 한 인간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죠.


그래서 우리는 사고체계를 마치 아웃소싱하듯 통계,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으로 확장합니다.

개개인이 파악하기에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를 어마어마한 데이터로 파악하는 것이죠.

우리가 마치 지구 반대편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실시간 뉴스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요.


제가 게임회사를 나와 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을 배운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단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의 IT 프로덕트와 서비스란 모두가 인간 기능의 확장이라는 생각도 꽤 오래 전부터 해 왔고요.

다시 "미디어와 예술" 교수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생각에 관한 생각, 심리에 관한 수학


슬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커다란 인사이트를 받았던 건 '언제 사람이 사고 오류를 저지르는가'는 아니었어요.

더 놀라웠던 건 수학과 경제학에서 오래 전에 고민한 개념들을 역으로 인간 오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그 개념을 평소의 사고체계에 대입하고 적용함으로써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말로 적어놓으면 그게 왜 대단할까 싶지만, 그런 수학적 개념과 정리들은 인간의 사고 오류를 교정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아니었으니까요. 원래는 현실의 현상을 설명하고 파악하기 위한 노력들이었죠.

세상에 존재해 왔으나, 누구도 연결성을 생각지 못한 심리와 수학이란 두 점을 연결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인간을 모방한 기계의 로직을 다시 인간이 학습해야 한다는 포인트가 아이러니하고 재밌습니다.

마치 SEO 스페셜리스트가 구글의 검색결과 판단 알고리즘을 역분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경영, 마케팅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들도 풍부하게 담아낸 탓에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다.

넉넉한 시간을 확보해서 읽을 가치가 있을 만큼 지적인 모험과 즐거움과 유희가 있었네요.


여윽시 전자책으로 사지 않은 건 매우 훌륭한 판단이었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리뷰였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국내도서
저자 :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 이창신역
출판 : 김영사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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